지지 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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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지통신은 1945년 도메이통신 해체 이후 설립된 일본의 통신사이다. UPI, AP통신, AFP, 로이터 등 주요 국제 뉴스 기관들과 제휴하여 국제 뉴스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경제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며 교도통신과 경쟁했다. 1971년 노사 갈등과 경영 악화, 1990년대 경영 재건 실패, 2011년 올림푸스 회계 부정 스캔들 오보 및 2012년 기사 표절 사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는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며, 뉴스 사이트 '시사닷컴'을 운영하고, 일본 국내외 지국을 통해 뉴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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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통신사 - [회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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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회사 이름 | 주식회사 시사통신사 |
영문 회사 이름 | Jiji Press Ltd. |
![]() | |
본사 위치 | 서울특별시중구을지로 5길 26 (수표동) |
설립일 | 1945년 11월 1일 |
업종 | 통신, 보도 |
법인 번호 | 7010001018703 |
사업 내용 | 매스미디어 뉴스 배포 디지털 뉴스 배포 금융, 증권, 상품, 행정 뉴스 배포 |
대표자 | 대표이사 사장 사카이 가쓰히코 |
자본금 | 4억 9500만 엔 (2021년 3월 31일 현재) |
발행 주식 총수 | 990만 주 (2015년 3월 말 현재) |
매출액 | 157억 엔 (2023년 3월기) |
순이익 | 6억 8898만 8000엔 (2020년 3월 31일 현재) |
순자산 | 272억 8334만 6000엔 (2021년 3월 31일 현재) |
총자산 | 392억 6495만 3000엔 (2021년 3월 31일 현재) |
직원 수 | 1145명 (2023년 3월 말 현재) |
결산기 | 3월 31일 |
주요 자회사 | 내외정세조사회(일반사단법인) 지방행재정조사회(일반사단법인) 중앙조사사(일반사단법인) 시사통신포토(구 PANA통신사) 시사종합연구소 시사통신출판국 시사통신빌딩관리 |
관련 인물 | 하세가와 사이지 (초대 대표이사) |
외부 링크 | 시사통신 공식 웹사이트 |
특기 사항 | 동맹통신사 (전신), 공동통신사 (동맹통신사 분할로 발족한 또 다른 법인) |
본사 정보 | |
본사 위치 (일본어) | 도쿄도 주오구긴자 5초메 15번 8호 (시사통신빌딩) |
본사 위치 (로마자) | Ginza 5-15-8, Chuo, Toky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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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수 | 일본 국내 78개 지점, 해외 28개 지점 |
재정 정보 (2016년) | |
순이익 | 2억 6200만 엔 |
자산 | 380억 엔 |
자기 자본 | 210억 엔 |
기타 정보 | |
설립일 (서기) | 1945년 11월 1일 |
전신 | 동맹통신사 |
직원 수 | 862명 |
대표 이사 | 오무로 마사오 (사장) |
2.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후인 1945년 11월, 전시 일본의 뉴스 서비스를 담당했던 연합통신사가 GHQ의 지령[10]에 따라 해체되면서 지지 통신사가 설립되었다. 지지통신은 연합통신사의 경제 뉴스 및 출판 부문을 승계했으며, 일반 보도 부문은 교도 통신사가 맡게 되었다. 초기에는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었고, 해외 귀국 직원 수용 등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11] 1949년 일본상업통신사와 통합하고, AP통신, 로이터, AFP, UPI 등 주요 외국 통신사와 제휴하여 해외 정보 공급 역할을 수행했다.[1]
당초 교도통신과 역할을 분담했으나, 1949년 양사 간 뉴스 공급 중단 합의[12] 이후 경쟁 관계에 들어섰다. 특히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지지통신이 매스미디어 대상 뉴스 서비스에 진출하면서 경쟁은 더욱 심화되었다.
1971년 일본경제신문사의 자회사 QUICK 등장으로 경영난에 직면했고[13], 열악한 직원 처우 문제와 맞물려 심각한 노사 갈등이 발생했다. 1968년 새 노동조합 결성[15] 이후 1971년 파업[16]과 주주총회 혼란[17]을 거치며 하세가와 사이지 사장 등 경영진이 사퇴했다.[14]
1990년대에는 경영 재건을 위해 로이터와 제휴했으나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1996년 미쓰비시은행과 도쿄은행 합병 특종 보도 당시, 고객사인 일본경제신문을 의식해 일본신문협회상 후보 신청을 철회한 일로 내부 비판이 커졌고, 관련 기자의 이직 및 사망(후에 산재 인정) 사건 이후 다수의 직원이 이탈했다. 이로 인해 2005년 사카키바라 준 사장이 임기 중 사퇴했다.
2011년 올림푸스 관련 오보[2], 2012년 워싱턴 특파원의 교도통신 기사 표절 사건[3] 등으로 당시 사장이 사임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2. 1. 연합통신사 해체와 지지통신 설립
제2차 세계대전 이전 국책 통신사였던 연합통신사(同盟通信社)는 종전 후 GHQ의 압력을 받았다. GHQ가 1945년 9월 24일 일본 정부에 "일본 정부의 뉴스 통제 배제, 각국 외신 통신 제공의 자유 및 정부 지원 기관인 연합통신사의 특권 박탈"이라는 지령을 내린 것을 계기로,[10] 연합통신사는 1945년 10월 31일 해산되어 교도통신사(共同通信社)와 지지통신사(時事通信社) 두 회사로 분할되었다.지지통신은 연합통신사 시절 경제 뉴스를 민간 기업에 배포하던 부문과 "세계주보"(연합 시대의 "연합세계주보")를 비롯한 출판 업무를 계승했다. 설립 초기부터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었다. 반면, 일반 보도 부문, 즉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뉴스 운영은 교도통신사로 이관되었다.
연합통신사의 주요 유산은 교도통신사가 계승한 반면, 지지통신은 해외에서 귀국하는 전 연합통신사 직원들을 받아들이면서 인건비 부담이 컸다. 이로 인해 출범 초기부터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11]
1949년에는 1887년 창립된 도쿄급보사를 전신으로 하는 일본상업통신사와 통합했다. 또한, 설립 초기부터 AP통신, 로이터(Reuters), AFP 등 해외 주요 통신사들과 제휴 관계를 맺고, 전후 혼란기에 해외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1]
교도통신사와의 관계는 분할 당시부터 복잡했다. 연합통신사 해산 당시 후루노 이노스케(古野伊之助)는 장래에 지지통신과 교도통신이 재통합될 것을 기대하며, 양사가 일반 뉴스와 경제 통신 분야로 역할을 분담하여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지지통신이 필요할 경우 교도통신으로부터 뉴스를 무료로 공급받고 전용선도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구상했다. 그러나 실제 분할 이후, 지지통신의 일반 뉴스 자체 취재는 "각서"에 의해 엄격히 제한되었고, 패전 직후 일본 경제의 피폐로 경제 통신 수입도 부진했다.
이에 1949년 7월 14일, 지지통신의 하세가와 사이지(長谷川才次) 사장은 교도통신의 마쓰가타 사부로(松方三郎) 상무이사(마쓰가타 마사요시(松方正義)의 막내아들)와 직접 협상하여 "각서" 폐지에 합의했다. 이 합의 이후 교도통신에서 지지통신으로의 뉴스 공급은 중단되었고, 후루노의 의도와는 달리 두 회사는 본격적인 경쟁 관계에 돌입하게 되었다.[12] 재통합 구상은 사실상 사라졌다.
2. 2. 초기 성장과 국제 협력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5년 11월, 전시 정부 통제 하에 있던 통신사인 연합통신사(同盟通信社, 도메이통신)가 해체되면서 지지통신(時事通信社)이 설립되었다. 이는 GHQ가 일본 정부에 뉴스 통제 배제와 연합통신사(同盟通信社)의 특권 박탈을 지시[10]한 데 따른 조치였다. 지지통신은 연합통신사의 경제 뉴스 부문을 승계했으며, 일반 보도 부문은 교도통신이 맡게 되었다. 교도통신사와는 달리 지지통신은 설립 초기부터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었다.설립 초기, 지지통신은 해외에서 귀국하는 구 연합통신사(同盟通信社) 직원들을 상당수 받아들여 인건비 부담이 컸고, 연합통신사의 주요 유산을 계승한 교도통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출발했다.[11]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49년에는 1887년 창립된 도쿄급보사(東京急報社)를 전신으로 하는 일본상업통신사(日本商業通信社)와 통합하여 조직을 확장했다.
국제적으로는 창립 초기부터 AP통신, 로이터(현 톰슨 로이터), AFP, UPI 등 주요 해외 통신사들과 제휴 관계를 구축했다.[1] 이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해외 정보를 일본 국내에 전달하는 중요한 정보원 역할을 수행했다.
2. 3. 경쟁 심화와 노사 갈등
교도통신과의 분할 당시 후루노 이노스케(古野伊之助)는 장래 두 회사가 다시 합병할 것을 기대하며 일반 뉴스와 경제 통신 분야로 역할을 나누었다. 이는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고, 지지통신은 필요한 일반 뉴스를 교도통신으로부터 무료로 제공받고 전용선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구상되었다. 그러나 실제 분할 이후에는 이러한 구상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일반 뉴스 취재는 '각서'에 의해 엄격히 제한되었고, 패전 직후 일본 경제의 피폐함으로 인해 경제 통신 분야의 수입도 좋지 않았다.[11][12]결국 1949년 7월 14일, 하세가와 사이지(長谷川才次) 사장은 마쓰가타 사부로(松方三郎) 교도통신 상무이사와 직접 협상하여 양사 간 뉴스 공급 중단과 '각서' 폐지에 합의했다. 이 합의는 후루노의 초기 구상과는 달리, 지지통신과 교도통신 간의 본격적인 경쟁 시대를 열었다.[12] 1964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지지통신이 매스미디어 대상 뉴스 서비스에 진출하면서 경쟁은 더욱 심화되었고, 재통합 구상은 완전히 사라졌다.
지지통신의 주 수입원은 금융기관 대상 정보 서비스였으나, 1971년 일본경제신문사(日本経済新聞社)가 자회사 QUICK를 설립하고 경제 정보 서비스 시장에 진출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QUICK의 전용 단말기 '비디오-I'는 빠르게 시장을 잠식했고, 지지통신의 경영은 악화되었다.[13] 여기에 영국의 로이터(Reuters)와 미국의 블룸버그 등 국제 통신사들의 일본 시장 진출까지 더해지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당시 언론계 내에서는 지지통신의 열악한 직원 처우를 비꼬아 "산케이 잔혹, 시사 지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러한 경영난 속에서 내부 갈등도 심화되었다. "독재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하세가와 사장의 경영 방식과 정재계 편향적 태도에 불만을 품은 직원들은 1968년, 실질적인 활동이 없던 기존 노조를 대신하여 '시사통신 노동조합'을 결성했다.[15] 약 120명이 참여한 새 노조는 대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1971년 3월 26일과 4월 28일에는 전면 파업에 돌입했고, 이 과정에서 기동대가 출동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16]
노사 대립은 1971년 5월 제51회 정기 주주총회에서 극에 달했다. 총회장에서 노조원의 질문이 갑자기 중단되고 제출된 의안이 강행 처리되자 노조 측이 격렬하게 반발하며 총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결국 하세가와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같은 해 6월 사퇴했다.[14][17]
1990년대에는 경영 재건을 위해 로이터와 제휴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교도통신과의 재통합 논의도 여러 차례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1996년에는 미쓰비시은행(三菱銀行)과 도쿄은행(東京銀行)의 합병 특종을 일본경제신문과 거의 동시에 보도했으나, 고객사인 일본경제신문을 의식한 경영진의 판단으로 일본신문협회(日本新聞協会) 후보 신청을 철회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반발한 당시 취재팀의 니시노 토모히코(西野智彦)는 회사를 떠나 TBS로 이직했다. 또 다른 팀원이었던 사카이 유우스케는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부정맥을 앓다가 33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이는 산재로 인정받았다. 이 사건을 전후로 많은 직원이 퇴사하여 민영 방송사나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하면서 경영 실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고, 2005년에는 사카키바라 준 사장이 임기 중 사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대외적으로는 '건강 악화'가 이유로 발표되었다).
2. 4. 경영 재건 노력과 현대의 지지통신
1990년대 들어 지지통신은 경영 재건을 목표로 로이터와 제휴를 맺었다. 이는 로이터의 지지통신 인수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해석되기도 했으나, 2000년경 로이터 자체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2006년 시점에서는 제휴의 뚜렷한 성과를 보기 어려웠다. 한편, 교도통신과의 재통합 논의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1996년에는 미쓰비시은행과 도쿄은행의 합병이라는 특종을 일본경제신문과 거의 동시에 보도했다. 이는 당시 큰 뉴스였지만, 지지통신 경영진은 주요 고객인 일본경제신문을 의식하여 일본신문협회상 후보 신청을 철회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 반발한 취재팀의 니시노 토모히코는 회사를 떠나 TBS로 이직했다. 팀의 다른 일원이었던 사카이 유우스케는 주택금융전문회사 문제 등을 취재하며 지속된 과로 끝에 같은 해 부정맥으로 33세의 나이에 사망했고, 이는 도쿄 중앙 노동기준감독서에 의해 산업재해로 인정되었다. 이 사건을 전후로 다수의 직원이 민영 방송사나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하면서 인력 유출 문제가 불거졌고, 경영진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이러한 내부 비판 속에서 2005년 사카키바라 준 사장이 임기 중 사임했다(대외적으로는 건강 악화를 이유로 들었다). 이후 사장단은 다음과 같이 교체되었다.
임기 | 사장 |
---|---|
2005년 ~ 2008년 | 와카바야시 세이조 |
2008년 ~ 2012년 | 나카타 마사히로 |
2012년 ~ 2016년 | 니시자와 유타카 |
2016년 ~ 2020년 | 오오무로 마사오[18][19] |
2020년 ~ 현재 | 사카이 카츠히코[19] |
한편, 2011년에는 올림푸스의 마이클 우드퍼드 전 CEO 관련 보도가 사실과 달라 기사를 철회하고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2] 또한 2012년에는 워싱턴 D.C. 특파원이 교도통신의 기사를 표절한 사실이 밝혀져 당시 사장이었던 나카타 마사히로가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3]
3. 연혁
4. 조직
지지통신은 직원들이 소유한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며, 주식은 공개적으로 거래되지 않고 직원 외 주주도 없다. 일본 전역과 세계 여러 주요 도시에 뉴스 지국을 두고 있다.
창립 이후 사원주주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외부 자본의 투입 없이 운영되어 왔다. 주주들이 투표를 통해 이사를 선출하고, 선출된 이사들이 상호 투표로 대표이사를 선출한다. 과거 쇼와 35년(1960년) 이후에는 주주가 직접 대표이사 후보를 선출하는 제도를 시행했던 시기도 있었다.
2022년 7월 1일 기준으로 조직 구성은 다음과 같다.[23]
부서 |
---|
사장실 |
총무국 |
법무실 |
경리국 |
해설위원 |
편집국 |
시스템개발국 |
업무국 |
마켓국 |
종합미디어국 |
스포츠사업추진실 |
국내·해외지사총지국 |
의견이나 주장을 제시하는 논설위원 제도를 두지 않고, 텔레비전 방송국처럼 해설위원을 두어 사건이나 현상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기는 것이 특징이다.
5. 해외 지국 및 총지국
지지 통신사가 운영하는 해외 지국 및 총지국 목록은 다음과 같다.[24]
지역 | 지국/총국 |
---|---|
미국 | 뉴욕 총국 |
워싱턴 | |
실리콘밸리 | |
로스앤젤레스 | |
상파울루 | |
아시아 | 중국 총국(베이징) |
방콕 | |
서울 | |
상하이 | |
홍콩 | |
타이베이 | |
마닐라 | |
쿠알라룸푸르 | |
싱가포르 | |
자카르타 | |
하노이 | |
뉴델리 | |
유럽 | 이스탄불 |
모스크바 | |
베를린 | |
브뤼셀 | |
파리 | |
런던 | |
중동·아프리카 | 카이로 |
오세아니아 | 시드니 |
5. 1. 시사속보 ASIA
지지 통신사는 중국과 동남아시아(방콕,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자카르타)의 각 지국에서 현지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들을 대상으로 유료 뉴스 서비스인 '시사속보 ASIA'(時事速報ASIA일본어)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팩스나 이메일을 통해 최신 뉴스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제공된다. 이러한 현지 뉴스 서비스 운영을 위해 해당 지역의 지국들은 현지 법인 형태로 설립되었으며, 각 지국의 지국장은 현지 법인의 사장을 겸임하고 있다.6. 출판 업무
연합통신사 同盟通信社일본어로부터 출판 업무를 인계받아 경제, 산업, 행정 관련 서적을 비롯하여 비즈니스 서적, 행정 연구 서적, 교육 서적 등을 출판하고 있다.
6. 1. 잡지
지지 통신사는 과거 연합통신사 (同盟通信社)로부터 출판 업무를 인계받아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현재 발행 중인 잡지로는 『교원양성세미나』가 있다. 과거에는 『주간시사』와 『세계주보』[25], 그리고 남성지 『엘메디오』를 발행했었다.7. 조사 업무
1946년 4월, 시사통신사(時事通信社|지지 쓰신샤일본어)는 조사국을 발족시켜 외부로부터 조사를 수탁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당시 재무성(大蔵省|오쿠라쇼일본어)으로부터 실태조사를 위탁받거나(1946년 4월), 자체적으로 기획한 여론조사(1946년 7월) 등을 실시했다. 1949년에는 조사국을 여론조사실로 개편했다.
1954년 9월에는 여론조사실을 중심으로, 기존 국립여론조사소( 国立世論調査所|고쿠리쓰 요론 조사조일본어 )의 기능을 이어받은 중앙조사사( 中央調査社|주오 조사샤일본어 )를 설립했다. 당시 시사통신사 사내 문서인 『全同文|젠도분일본어』(1954년 9월 28일자)에 따르면, 중앙조사사는 “실질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시사통신사의 부속 기관이며 여론조사, 시장조사, 실태조사 등의 수탁 조사를 주요 업무로 하지만, 외부적으로는 독립된 사단법인의 형태를 띤다”고 설명되었다.
8. 시사닷컴
시사통신사가 운영하는 뉴스 사이트이며, 동시에 지지통신사의 공식 웹사이트이기도 하다.[5]
2015년 11월 25일, AKB48이 12월 8일에 첫 공연 10주년을 맞이하는 것에 맞춰 『시사닷컴』 내에 AKB48 그룹 뉴스 전문 사이트인 "AKB48 그룹 뉴스와이어"를 개설했다.[26][27]
또한, 인터넷 행정 정보 서비스인 "iJAMP"도 운영하고 있다. 다만 이 서비스는 중앙성청이나 지방자치단체 등 회원 전용 사이트이다.
9. 주요 사건 및 논란
지지 통신사는 창립 이후 여러 차례 주요 사건과 논란에 연루되며 언론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를 드러냈다.
2011년에는 올림푸스 사건과 관련하여 마이클 우드포드 전 올림푸스 사장에 대한 오보를 내보냈다가 당사자의 항의를 받고 기사를 철회하며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2][28] 이듬해인 2012년에는 워싱턴 D.C. 지국 소속 기자가 교도통신의 기사를 표절한 사실이 밝혀져 큰 파문을 일으켰고,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당시 사장이었던 나카타 마사히로가 사임했다.[3][29]
2015년에는 스가 요시히데 당시 내각관방장관의 정례 기자회견에서 지지 통신사 기자가 오키나와현의 미군 기지 관련 조례에 대해 "이미 그런 녀석들은 내버려둬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라는 부적절한 질문을 하여 논란이 되었고, 해당 기자는 다른 부서로 발령되는 인사 조치를 받았다.[30][31] 또한 2018년에는 일본의 유명 하이쿠 시인인 가네코 토오타가 사망했다는 오보를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이는 관계자 1명의 정보에만 의존하고 기본적인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한 결과였으며, 관련자들은 징계 처분을 받았다.[32][33][34]
9. 1. 올림푸스 사건 관련 오보
2011년 11월 24일, 지지통신은 올림푸스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올림푸스의 CEO였던 마이클 우드포드 전 사장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보도했다.[2][28] 기사는 우드포드 전 사장이 회사의 회계 부정을 묵인하는 대가로 자신을 CEO로 임명하도록 경영진을 협박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2][28]이에 대해 우드포드 전 사장은 "올림푸스의 소위 무명의 소식통이 분명히 거짓말을 했고, 지지통신은 적절한 조사와 검증 없이 단순히 그 거짓말을 보도했다"고 강하게 항의했다.[2] 그는 지지통신의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결국 지지통신은 같은 해 12월 2일, 해당 보도를 철회하고 사과했다.[2][28] 지지통신은 사과문에서 기사가 복수의 관계자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우드포드 전 사장에게는 직접 확인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28] 이 사건은 언론 보도에서 사실 확인과 검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9. 2. 워싱턴 지국 표절 사건
2012년 6월, 지지 통신사의 워싱턴 D.C. 지국 소속 남성 기자가 교도통신의 기사를 표절한 사실이 드러났다.[3][29] 표절된 기사는 "ING, 역대 최고 벌금 부과 = 금융 제재 위반으로 493억 엔"이라는 제목의 내용이었다.[29] 해당 기자는 "참고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또한 기사 원고를 검토했던 외신경제부 차장과 정리부 차장도 사원으로 강등되는 징계를 받았다.[29]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6월 18일에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나카타 마사히로 사장이 사임하기로 결정되었다. 나카타 사장은 "신뢰 회복을 위한 첫걸음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사임을 표명했습니다"라고 밝혔다.[29] 이 사건은 언론의 저작권 침해 문제와 언론 윤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9. 3. 기타 사건 및 논란
- 2011년 11월, 올림푸스의 손실 은폐 문제와 관련하여 올림푸스의 마이클 우드포드 전 사장이 CEO 자리를 얻기 위해 부정을 묵인하는 거래를 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우드포드 전 사장의 항의를 받았고, 지지 통신은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은 취재 소홀을 인정하며 같은 해 12월 2일 사과 기사를 게재했다.[28]
- 2012년 6월에는 미국 워싱턴 지국 소속 기자가 교도통신의 기사를 표절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기자는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관련 간부들도 강등되었다.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당시 나카타 마사히로 사장이 사임했다.[29]
- 2015년 7월 13일, 오키나와현 의회의 미군 기지 매립용 토사 규제 조례 제정과 관련하여, 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의 정례 기자회견에서 지지 통신사 기자가 "이미 그런 녀석들은 내버려둬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라는 부적절한 질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30] 지지 통신은 다음 날 해당 기자를 다른 부서로 발령내는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31]
- 2018년 2월 19일에는 일본의 유명 하이쿠 시인인 가네코 토오타가 사망했다는 오보를 내보냈다. 실제 사망은 다음 날인 2월 20일에 이루어졌으나, 지지 통신은 관계자 1명의 정보에만 의존하여 가족이나 병원 등 기본적인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속보를 내보낸 것으로 밝혀졌다.[32][33] 이 오보 사건으로 인해 기자는 출근 정지 14일, 편집국장 등 관련 간부들은 감봉 및 견책 처분을 받았다.[34]
10. 기타
지지통신은 직원 소유의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며, 주식이 공개적으로 거래되지 않고 외부 주주도 없다.[3] 일본 전역과 세계 여러 주요 도시에 뉴스 지국을 두고 있다.
교도통신사(共同通信社)와는 연합통신사(同盟通信社)에서 분리될 당시 재통합을 염두에 두었으나,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지지통신이 매스미디어 대상 뉴스 서비스에 진출하면서 경쟁 관계가 되었고 재통합 구상은 사실상 사라졌다.[12]
교도통신사(共同通信社)로부터 국내 뉴스를 수신하지 않는 신문사에도 지지통신은 국내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十勝毎日新聞이나 八重山毎日新聞과 같은 지방신문 외에도 일본신문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세이쿄 신문(聖教新聞)이나 세계일보(世界日報), 또는 국정 정당의 기관지(공명신문, 아카하타)가 일반 뉴스를 게재하는 경우, 국내 뉴스는 지지통신, 해외 발신 뉴스는 지지통신의 계약처인 AFP통신으로부터 배포받는 경우가 있다.
설립 경위상 연합통신사(同盟通信社)의 모체 중 하나인 덴츠의 대주주였으며, 임원을 파견하기도 했다. 2001년 덴츠가 도쿄 증권거래소에 신규 상장했을 때, 보유하고 있던 덴츠 주식의 일부를 매각하여 그 매각 이익으로 도쿄 긴자에 신사옥을 건설하는 자금을 마련했다. 이전에는 최대 주주였지만, 재무적인 이유로 주식 매각을 진행하여 2008년 6월에 최대 주주 자리를 교도통신사(共同通信社)에 넘겨주었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덴츠의 지주회사인 덴츠그룹의 제3위 주주이다.[35] 지지통신은 2016년 12월 기준으로 덴츠 발행 주식의 5.85%(1,690만 주)를 보유하고 있었다.[4]
지지통신은 유나이티드프레스인터내셔널(UPI), AP통신, AFP, 로이터(Reuters) 등 다른 국제 뉴스 기관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1]
11. 주요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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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事通信社長に境取締役 大室社長は相談役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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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B48専門サイトを開設=姉妹グループ情報も-時事通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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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B48グループ ニュースワイヤー」TOPペー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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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事通信が陳謝の記事配信 オリンパス元社長に直接取材せ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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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報道機関としての信用大きく失墜」時事通信社長退任コメン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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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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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事通信、記者を注意 沖縄巡る質問で「不適切な表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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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日新聞デジタル
201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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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時事通信、記者を配置換え 「不適切な表現で遺憾」
http://www.asahi.com[...]
朝日新聞デジタル
201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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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時事通信が「俳人の金子兜太さん死去」と誤報記事を配信 1時間後に取り消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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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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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金子兜太さん死去」誤報の記者を出勤停止処分に 時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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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日新聞
2018-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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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子兜太さん死去前に訃報、時事記者ら懲戒処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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